파워포인트 최강 툴 Power Mockup 소개 합니다. 


http://www.powermockup.com/


<site 메인>


<동영상소개>



임시 사용기





- 임시로 만들어 본 페이지다. 이렇게 오른쪽에 템플릿 화된 내용들이 있어서 이것을 화면에 끍어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위에 괕이 임시로 간단하게 페이지를 만들어 보았다. 정말 이전 일일이 할때 보다 더 큰 포퍼먼스가 난다. ^^


그런데 필자는 아직 무료 회원이라 활성화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이부분은 개인 사용자라면 블로깅을 하고 이곳에다 메일을 보내면 개인 라이센스를 제공해 준다. 


Download Shape Library 기능


여기에는 추가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기능을 라이브러리로 추가해서 사용 가능 하다. 

개인적으로 웹기획자로서는 이 기능으로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1.  안드로이드 UI 지원- 안드로이드 화면 기준으로 화면 설계가 가능하다. 




2. 아이폰 U.I 지원 - 아이폰 U.I대로 화면을 그릴 수 있어서 편리함을 제공한다. 



        

3. 부트스크랩 와이어 프레임 제공




4. 일반 와이어 프레임 모양 제공



5. 디자인 주석 모양 제공 - 주석 제공 



6. 다양한 아이콘 제공 - 실제로 프로젝트 때 사용해 봤는데 넘 편하고 좋다. 



7. 사진 셈네일 제공 - 사진 섬네일 넣을 때 일일이 찾을 필요 없이 제공되는 사진으로 넣을 수 있다. 



8. 다양한 인종의 썸네일 제공 - 아이폰이나 안드로이시 유용할 거 같다. 그리고 네모난 모양으로도 변경 가능하다.  





웹기획을 하는 나로서는 정말 필요한 플러그 인 입니다. 

구매를 생각 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일단 무료 라이센스를 써보고 구매하려고 합니다.  


향후 Power Mockup 사용해서 어떤 퍼포먼스가 나왔는지 다시 리뷰 하려고 합니다. 


만약 라이센스가? 도착한다면 다시금 브로깅 하도록 하겠습니다.  ^^




Posted by Jae On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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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CEO 이자 내가 스트븐 잡스 이외에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직접적으로 이 버진 그룹의 제품을 사용할 기회는 없지만 제품이 있다면 애플 처럼 꼭 사용하고 싶은 회사이다. 




What is a business? It is simply a group of people coming together to make a positive difference to people‘s lives. ::Richard Branson Twitter


- 기업은 무엇인가? 기업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이다.

:: 리처드 브랜슨 트위터


리처드 브랜슨 트위터 : https://twitter.com/richardbranson






▌리처드 브랜슨 어록 


1.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진다면, 99%의 사람은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파고 들어라, 당장에 시작하라.

Whenever you have an idea, 99 percent of people are going to tell you it won't work.

Screw it. Just do it

 

2. 당신은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흥분된다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라

If yhou spot an opportunity and are really excited by it, throw yourself into it sith everything you've got

 

3. 사업은 빠져들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창조적 본능을 표출시킬 수 있어야한다.

A business has to be involving, it has to be fun

and it has to exercise your creative instincts

 

4. 사람은 걷는 규칙을 배워서 걷지 않는다. 걸음을 시도하고, 넘어지면서 배운다.

You don't leam to walk by following rules. You learn by doing, and by falling over

 

5. 비즈니스에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In business, as in life, all that matters is that you do something positive

 

6. 다른 사람이 사업을 엉망으로 만드어놓았을 때가 그 사업을 들어갈 때이다.

The timeto go into a new business is when it's badly run by others

 

7. 인생의 약 80%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집에서 재미있게 보내기를 원하면서 왜 일할 때는 재미있게 일하려 하지 않는가?

Some 80% of your life is spent working

You want to have fun at home why shouldn't you have fun at work?

 

8. 용감한 사람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그러나 조심하는 사람은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한다.

The brave may not live forever. But the cautious do not live at all

 

9. 사업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다면, 실수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One thing is certain in business you will make mistakes

When you are pushing the boundaries, mistakes are inevitable - how you react is important

 

10. 상처를 받았다면 상처를 치유하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라.

     최선을 다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앞으로 나아갈 시점이다.

If you're hurt, lick your wounds and get up again.

If you've given it your absolute best, it's time to move forward









Posted by Jae On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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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개의 좋은 회사로부터 연구를 시작하여, 그 회사들의 퍼포먼스를 40년에 걸쳐 조사했다. 그 중 위대한 회사가 된 11개를 찾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는 방법을 지금 소개하고자 한다. 여러분의 회사를 변모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계란과 플라이휠, 고슴도치, 버스 및 그 밖의 필요사항에 대한 교훈이다.

여러분에게 변화에 관계가 있는 뇌 앞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다.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 배운 것 전부를 여러분이 잊어주었으면 한다. 회사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거의 모든 수술 처방이 거의 다 신화에 불과함을 깨달았으면 한다.

변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신화: 이 접근방식에는 런칭(launching) 행사, 극적인 슬로건, 폭포수처럼 연이어 벌어지는 활동이 따른다.

플랫폼을 불태워야 한다는 신화: 이 신화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은” 직원이 변화가 필요함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게 만드는 위기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바뀌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스톡옵션이 있어야 한다는 신화: 스톡옵션, 높은 연봉, 보너스가 변화라는 바퀴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인센티브다.

두려움에 쫓겨야 변화가 생긴다는 신화: 뒤로 처진다는 두려움, 남의 승리를 보고만 있는 두려움, 관리 책임자의 입장에서 엄청난 실패를 관장하는 두려움 등이 모두 다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들 말한다.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해야 한다는 신화: 다른 회사를 사들여서 성장할 수 있다는 신화로서, 돈을 써서 위대한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술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신화: 찾고 있는 혁신적인 돌파는 경쟁을 훌쩍 뛰어넘는 기술을 씀으로서 달성될 수 있다는 신화다.

혁명의 신화: 큰 변화는 갑작스럽게 확 바꾸고, 극히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신화--크고 비연속적이고 박살을 내는 한 번의 돌파.

틀렸고, 틀렸고, 틀렸고, 틀렸고, 틀렸고,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이런 신화와 그 밖의 변화의 신화에 관한 실제 모습은 이렇다.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변화한 (good-to-great) 회사는 그런 변화에 대해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았고 별도의 프로그램도 전혀 없었다. 그런 회사는 위기에 대해 흥분하여 마구 떠들어 대지 않는다--그리고 있지도 않은 위기를 날조하지도 않는다.

“동기부여”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그런 회사에 있는 사람은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있다. 돈과 변화의 컨트롤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오히려 평범한 상태가 지속되게 만든다. 다른 회사를 인수해도 위대한 회사가 되기 위한 자극이 되지도 않는다. 평범한 회사 두 개를 합쳐도 위대한 회사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기술이 분명히 중요하나, 오직 변화가 시작된 후에야 그 기술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신화의 경우, 극적 과정에서 극적 결과가 오지는 않는다. 설사 그 결과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해도 그렇다. 어떤 본격적인 혁명, 즉, 그것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혁명으로 느껴지는 혁명은, good에서 great로 가기 위한 영속적 도약을 초래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내 리서치 팀과 내가 좋은 회사가 위대한 회사로 바뀌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5개년 프로젝트를 끝내면서 이런 신화가 분명히 드러났다. 1,435개의 오래 동안 있어온 회사의 리스트를 체계적으로 철저히 조사하여 평균 이하의 성과에서 위대한 성과로 도약한 특별한 경우를 일일이 찾았다.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도약을 한 후, 15년에 걸쳐 전반적 주식 시장을 적어도 세 배 이상 넘어서는 누적 주식 배당을 만들어낸 회사이어야 했다--그리고 그 산업과는 무관한 도약이어야 했음. 사실, 우리가 찾은 그 11개의 good-to-great 회사는 주식 시장보다 평균 6.9배의 평균 주식 배당을 했다. 이것은 전설적인 잭 웰치가 다스리든 제너럴 일렉트릭의 퍼포먼스보다 2 배가 넘는다.

이 놀라운 good-to-great 리스트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애보트 연구소 Abbott Laboratories (시장의 3.98 배), 패니 매 Fannie Mae (시장의 7.56 배), 킴벌리 클라크 Kimberly-Clark Corp. (시장의 3.42 배), 늎코어 회사 Nucor Corp. (시장의 5.16 배), 그리고 웰스 파코 Wells Fargo (시장의 3.99 배). 그런 예상치 않은 회사의 하나가 크로거 컴패니인데--식품 체인 업체--80년 간 오로지 평균적 성적을 올리는 회사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으며 순조롭지 않게 지내오다가, 어떻게 하다가 갑자기 그 2류 수준에서 벗어나 다음 15년에 걸쳐 주식 시장을 4.16배나 앞섰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3년에서 1998년까지 크로거가 시장보다 10배나 나은 성적을 올렸다.

이 극적이고 두드러진 good-to-great 회사로의 각각의 변화에서, 기적의 순간은 없었다는 동일한 점을 우리가 발견했다. 그러기보다는, 각 회사와 그 리더, 그 회사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수월성에 이르는 과정을 꾸준히 밟아 왔다. 각 사례를 보면, ‘파멸의 올가미‘가 아닌 ’플라이휠 효과‘의 승리이었고, 임시방편이 아니라 꾸준한 자제력의 승리이었다 (역주: disciplined 어려움 속에서도 조용하게 자제심을 갖고 원칙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 있는). 그리고 정말 의외의 결말은 우리가 연구한 비교 회사가--가장 중요한 몇 해 동안 사실상 동일한 기회를 가졌던 회사가--위에서 설명한 변화의 신화를 비판 없이 완전히 믿었고--good에서 great로의 도약을 못했다는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방식

계란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날이면 날마다 계란은 그 자리에 있다. 아무도 계란에 주목하지 않는다. 아무의 눈에도 안 뜨인다. 아무도 계란의 사진을 찍지도 않고 또 유명한 사람 위주인 비즈니스 잡지 표지에 그 사진을 올리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껍질에 금이 가면서 병아리가 톡 튀어 나온다.

갑자기, 메이저급 잡지와 신문이 얼른 그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계란에 생긴 놀라운 변화!” 그리고 “계란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병아리!”라는 기사를 쓴다. 겉에서 보면, 그 이야기가 언제나 갑자기 벌어진 놀라운 사건 같이 써있다--마치 그 계란이 갑자기 크게 변신하여 병아리가 된 듯이 말이다.

이번엔 병아리의 관점에서 그 계란을 상상해봅시다.

동면하는 듯 보이는 이 계란을 외부 세계가 무시하고 있는 동안, 그 안의 병아리는 진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변화하고--있었다. 병아리의 관점에서는, 알을 깨는 그 돌파의 순간은 그 순간까지 이르는 기나긴 일련의 행보 중 단지 일보 더 나아가는 것이었다. 큰 걸음이었다고 해도, 겉에서 보이 듯 급격한 변화는 아니었다.

이것이 어리석은 비유일 수 있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변화를 보는 방식도 그에 못지않게 어리석다. “변화가 생기면” 누구나 다 그 “기적의 순간”을 찾는다. 하지만 good-to-great 경영자에게 언제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물어봅시다. 성공적 변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열쇠 역할을 하는 단 하나의 이벤트를 그런 사람들도 정확히 답하지 못한다.

(일반 소비재까지 파는 최대의 미국식 약국인) ‘월그린즈’를 봅시다. 40년 이상, 월그린즈는 소비재를 종합적으로 파는 (general market) 보통 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75년에 (파란 하늘에 번개처럼!) 월그린즈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계속 올라갔다. 1975년 12월 31일부터 2000년 1월 1일 사이에, 월그린스 사에 투자한 1달러가 인텔 사에 투자한 1달러보다 2배나 앞섰고, 제너럴 일렉트릭을 거의 5배, 코카콜라를 근 8배나 앞섰다. 일반 주식 시장보다 15배 이상 좋은 성적으로 올렸다.

월그린스의 핵심 중역에게 good-to-great 로의 변화가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 말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의 답은 “1971년과 1980년 사이쯤”이었다 (참, 꽤나 좁혀서 말해주는 편이다!)

월그린스의 경험은 good-to-great 성적을 올린 회사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건강관리 및 제약 회사) 애보트(Abbot)의 리더가 말하기를 “하늘로부터의 갑작스런 계시나 눈부신 섬광은 아니었다”고 했다. 킴벌리-클라크 임원은 “이런 일은 하루 밤 새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웰스 파고 임원은 “어떤 스위치 하나를 딱 한번 눌러서 생기는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

엄청 크고 무거운 플라이휠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축에 수평으로 달려 있는 크고 무거운 금속 디스크다. 지름이 30미터쯤이고 두께는 3.3 미터, 무게는 25톤쯤 된다. 그 플라이휠이 바로 우리 회사다. 우리가 할 일은 되도록 그 플라이휠을 빨리 움직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모멘텀(momentum, 推動力, 惰力)--중량 곱하기 속도--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그 플라이휠이 서있다. 그 플라이휠을 움직이려면, 엄청나게 힘을 써야 한다. 온 힘을 다해 밀다 보면 결국은 그 플라이휠이 아주 조금 움직인다. 2, 3일 꾸준히 노력하면, 그 플라이휠을 완전히 한 바퀴 돌게 된다. 계속 밀다 보면, 그 플라이휠이 약간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많은 노력을 한 후 드디어 플라이휠이 두 번째 회전을 한다. 미는 일을 꾸준히 지속한다. 플라이휠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여섯 바퀴 돌아간다. 한번 돌 때마다 더 빨리 돌다가, 언제라고 할 수 없는 시점에 갑자기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돌파구가 뚫린다. 그 무거운 휠의 모멘텀(추동력)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자체의 무게가 모멘텀을 일으키면서, 플라이휠이 점점 더 빨리 돈다. 전보다 더 세게 밀고 있지 않아도, 그 플라이휠에 가속도가 붙고, 모멘텀이 만들어지고, 속도가 빨라진다.

이것이 바로 플라이휠 효과다. good에서 great로 바뀌는 회사 내에 있을 때 느끼는 감각이 바로 그거다. 가령, 크로거(Kroger)의 경우,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회사가 결국 각 그로서리 스토어의 모든 면을 변화시키는 새 전략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어도 단 하나의 큰 변화 프로그램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기보다는,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플라이휠을 밀어야 한다. 크로거의 변화를 일으킨 짐 헤링이 바로 그렇게 말했다. 짐 헤링은 변화 프로그램과 동기 부여를 하려는 스턴트를 멀리 했다. 헤링과 그의 팀은 차츰 차츰 꾸준히 플라이휠을 돌리기 시작했다--그들의 계획이 잘 이해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쌓아가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성취한 것을 볼 수 있는 식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제시했다”고 헤링이 말하고 이어서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는 결과를 보이도록 애씀으로서, 대다수의 사람이 그 성공을 통해, 그저 말 뿐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잠시 그 점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왜 지나치게 홍보하는 변화 그램이 결국 대부분 실패할까? 결과에 대한 책임이 결여되어 있고,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플라이휠 효과와는 정반대이며, 파멸의 고리(the Doom Loop, 또는 ‘파멸의 소용돌이‘)이다.

‘파멸의 올가미’ 속으로 빠진 회사도 변화가 생기기를 원하기는 한다--그러나 그런 회사는 플라이휠 효과를 일으키는 조용한 자제력이 (discipline) 부족하다. 오히려 그런 회사는 “군대를 동원하기” 바라면서, 큰 팡파르를 울리며, 변화 프로그램에 착수한다. 그들은 어느 길을 따라 가기 시작하다가, 그만 실망하여 방향을 바꾼다. 여러 해 동안 갈팡질팡 한 후, 어떤 지속적 모멘텀을 쌓지 못했음을 느끼고 만다. 플라이휠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런 회사는 ‘파멸의 올가미’에 빠진 것이다: 실망스런 결과로 인해 사람들의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새 방향을 모색하게 되고--새 리더, 새 프로그램--또 그로 인해 모멘텀이 안 생기고, 또 그로 인해 실망스런 결과가 온다.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소용돌이다. ‘파멸의 올가미’를 경험한 사람은 그런 올가미가 (또는 소용돌이가) 회사의 사기를 얼마나 뚝 떨어트리는지를 안다.

1980 년대의 워너-램버트 사(Warner-Lambert Co.)를--질레트 사와 우리가 직접 비교한 회사--살펴봅시다. 워너-램버트 사가 비즈니스 위크 잡지사에게 최고의 소비재 회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나자, 그 회사가 갑자기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건강관리 제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1981년, 이 회사가 다시 코스를 번복하여 제품 다양화와 소비재로 되돌아왔다. 그러다 1987년, 워너-램버트 사가 또 다시 U 턴을 하면서 소비재에서 손 떼고, 머크(Merck) 사와 경쟁하고 싶다고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 1990년 초에는, 건강관리 개혁이 멀지 않았다는 정부의 발표에 부응하여 다양화와 소비재 브랜드를 또 다시 받아들였다.

1979년부터 1998년 사이, 워너-램버트 사가 세 번의 큰 구조 조정을 겪었다. CEO 한 명 당 하나씩. 새 CEO마다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을 갖고 왔고, CEO마다 그 전임자의 모멘텀(추동력)을 중단시켰다. 그 ‘파멸의 올가미’가 한번 돌 때마다, 이 회사는 소용돌이 속으로 더 아래로 내려갔고, 결국 2000년에 파이저 사가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 반면, 플라이휠은 왜 효과가 있을까? 우선 무엇보다도, 실제 회사의 실제 사람들은 이기는 팀에 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진정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이바지하고 싶어 한다. 톱 스피드로 잘 돌아가는 어떤 조직의 일부가 되는 흥분과 만족을 느끼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모멘텀(추동력)의 마력을 느끼기 시작할 바로 그 때--구체적인 결과를 보기 시작하고 그 플라이휠이 스피드를 내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을 때--사람들이 줄을 서고, 온힘을 다해 애쓰고, 밀어댄다.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사람: 먼저 “누구”, 나중에 “무엇“

버스 운전사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버스, 즉, 회사가 지금 서 있는데, 버스를 가게 하는 것이 운전사의 책임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거기로 갈지, 그리고 누구와 같이 거기로 갈지는 버스 운전사가 결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훌륭한 운전사가 (즉, 비즈니스 리더) 버스 승객에게 버스가 어디로 간다고 알려주는 식으로--새 방향을 정하거나 회사 차원의 참신한 비전을 자세히 설명하는 식으로--즉시 그 여정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good에서 great로 변화시킨 회사의 리더는 “어디”가 아니라 “누구”로부터 시작한다. 행선지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고려한다. 그런 사람은 먼저 올바른 (적합한)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잘못된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올바른 자리에 앉히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리 상황이 긴박해도 그 원칙을--먼저 사람, 나중에 방향--엄수한다. 데이비듯 맥스웰이 버스를 몰고 간 경우를 봅시다.

맥스웰이 1981년에 패니 매(Fannie Mae)의 CEO가 되었을 때, 그 회사는 영업일 하루마다 1백만 달러를 잃고 있었고, 560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 담보부 대출의 가치가 구매가보다 낮았다. 이사회는 맥스웰이 그 회사를 구출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간절히 알고 싶어 했다.

맥스웰은 모든 good-to-great 리더가 했듯이 “무엇”이라는 질문에 답했다.그가 그들에게 한 말은 첫 물음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또 잘못된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기 전에 어디로 버스를 몰고 가야 할지를 정하는 것은 완전히 그릇된 접근법이다.

A+ 노력을 투입할 의사가 있는 A급 사람을 위한 자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맥스웰이 그의 경영 팀에게 말했다. 맥스웰이 그 팀의 각 멤버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여행은 터프한 자동차 여행, 매우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 가고 싶지 않다면, 좋다, 그렇다고 말해라. 자 이제 버스에서 내릴 때라고 맥스웰이 말했다. 아무런 질문도 없었고, 비난에 대한 반격도 없었다. 26 명의 임원 중 총 14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금융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영리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중역 몇 명이 대신 그 자리를 채웠다.

버스에 올바른 사람을 태우고 올바른 자리에 앉힌 다음, 맥스웰은 “무엇”이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맥스웰과 그의 팀이 그의 재직기간 초에는 하루에 1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던 상태에서 그 기간아 끝날 때는 하루에 4백만 달러를 버는 상태로 패니 매를 전환시켰다. take a from b. 1991년에 맥스웰이 떠난 후에도, 그의 훌륭한 팀이 계속 그 플라이휠을 움직여--돌리고 또 돌려--패니 매가 1984년부터 1999년까지 시장 평균보다 근 8배의 누적 주식 수익을 만들어냈다.

처음 시작하는 일에 관해, good-to-great 리더는 세 가지 단순한 진실을 잘 알고 있다. 첫째, “누구”로부터 시작하면, 급변하는 세계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우리 버스에 어떤 사람들이 탔는데 그 버스가 어디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땄다면, 길을 따라 10마일 내려갔을 때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발견했을 때 난처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버스에 탄 이유가 그 버스에 탄 다른 모든 훌륭한 사람들 때문이라면, 바뀌는 상황에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영리하게 반응할 수 있다. 둘째, 버스에 올바른 사람이 타고 있으면, 그런 사람의 동기를 유발시키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올바른 사람은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되어 있다.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고 예상되는 팀의 일부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세 번째는, 버스에 그릇된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다른 것이 문제가 안 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훌륭한 성과를 올리진 못한다. 평범한 사람과 위대한 비전을 결합해봤자 평범한 결과 밖에 안 생긴다.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생각: 여우인가 고슴도치인가?

여우와 고슴도치라는 두 가지 동물을 상상해봅시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요? 고대 그리스의 우화에는 소소한 일을 많이 아는 여우와 단 하나의 큰 것을 아는 고슴도치의 차이를 구별한다. 모든 good-to-great 리더는 결국 고슴도치이다. 그런 사람은 복잡한 세상을 단 하나의 체계적인 생각으로--모든 결정을 통합하고 체계화하고 가이드 하는 기본 원리 같은 것--단순화 시키는 법을 안다. 그렇다고 해서 고슴도치가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말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사상으로 축약하는 위대한 사상가처럼 (아담 스미스와 보이지 않는 손, 다윈과 진화론), good-to-great 회사의 리더는 단순하면서도 예리한 통찰과 깊은 이해를 보이는 ‘고슴도치 개념“을 발전시킨다.

우리 회사를 위한 고슴도치 개념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혹하고 불쾌한 구체적 사실을 직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느 good-to-great CEO는 우선 “왜 우리는 100년 동안 형편없었던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질문은 가혹하다--그리고 이 질문이야말로 정확히 변화를 점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타입의 질문이다.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나타내는 서로 엇갈리는 세 개의 원을 정확히 배치했을 때 ‘고슴도치 개념‘에 근접한다. 즉,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와 똑 같이 중요한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할 수 없는 게 무엇인가?다) 우리의 경제적 엔진을 (어떤 '"X" 단위 당 이익이나 현금 흐름) 가장 잘 움직이게 drive 하는 경제적인 분모(分母)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핵심 멤버가 깊이 열정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놀람이 없이 가혹한 사실에 직면하여, 이 세 가지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의 ’고슴도치 개념‘이 서서히 드러남을 보기 시작한다.

가령, 웰스 파고 사가 자사의 ‘고슴도치 개념’을 이해하기 전에는, 그 회사의 리더들이 자기 회사를 글로벌 뱅크로 만들려고 애썼었다: 마치 미니 시티코프(mini-Citicorp) 처럼 활동했고--그 점에서는 평범한 은행이었다.

그러다가 웰스 파고 팀이 이렇게 자문했다: “다른 회사보다 우리가 더 잘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가혹한 사실은 웰스 파고가 결코 세계 최고의 글로벌 뱅크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 그 회사의 리더십 팀이 그 은행의 국제 업무의 대부분에서 손을 뗐다. 그 은행의 경제 엔진에 관해 질문했을 때, 웰스 파고의 리더들은 두 번째의 가혹한 사실을 직시했다: 규제가 없어진 세계에서, 상업 은행 업무는 상품이 될 수도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필수적인 경제적 드라이버(driver, 모티베이션 생성 장치)가 대부 건당 이익이 될 수 없었고, 종업원 당 이익이어야 했다. 이 은행은 전자 뱅킹의 선구적 리더가 되고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소그룹이 운영하는 실용적인 지점을 열기로 그 업무를 전환했다. 종업원 당 이익이 급등했다. 끝으로, 열정에 관한한, 웰스 파고 은행 팀의 멤버들은 이렇게 동의했다: 전통적 은행 문화의 무분별한 낭비와 스스로 정하여 받는 임직원 수당이 신물이 난다고 생각했다. 낭비가 심하고, 엘리트 의식이 있는 은행 문화가 지배하던 그 업계에서 자신들은 금욕적 스파르타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웰스 파고 팀은 결국 그 세 개의 원을 하나의 단순하고 명확한 ‘고슴도치 개념’으로 바꾸었다. 은행을 기업처럼 운영하며, 미국 서부에 주력하고, 끊임없이 종업원 당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개념이었다. “기업처럼 운영한다”와 “자신이 주인인 듯 운영한다”가 주문이 되었고, 단순화와 집중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그 단순한 아이디어에 편집광적으로 집착하여, 웰스 파고가 좋은 성과를 내는 은행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은행으로 도약했다.

good에서 great로 가는 여정에서, ‘고슴도치 개념’의 의미를 정확히 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통찰과 깨달음은 하루 밤 사이에--또는 현장 밖에서 한 차례 시간을 보낸 후--생기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good-to-great 회사가 ‘고슴도치 개념’을 대단히 명확히 하는데 4년이 걸렸다. 그것은 하고 또 하는 반복적 과정이며--예리한 질문과 활발한 토론, 결정적 액션, 누구를 탓함이 없는 시체 해부--올바른 사람들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사이클이며, 가혹한 사실을 받아들이고,3 개의 원에 의한 가이드를 받으면서 행해진다. 이것이 계란 속의 병아리다.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행동: “중단할 일”의 리스트

자, 여러분의 책상을 봅시다. 여러분이 철저히 일하는 리더와 비슷하다면, 자세히 정해놓은 할 일의 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자, 이제는 다른 면에서 봅시다: 중단할 일의 리스트는 어디 있는가? 리더는 일을 이루어지게 만든다고들 한다--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플라이휠을 밀려면 많은 일치된 노력이, 즉,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엄밀한 계획에 따라 굳은 결심을 갖고 하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good-to-great 리더가 남다른 점은 ‘고슴도치 개념’에 꼭 맞지 않으면, 뭐든 다 중단한다는 엄격한 원칙을 고수함을 보인다는 젓이다.

다윈 스미스와 그의 경영 팀이 킴벌리-클라크 사의 ‘고슴도치 개념’을 구체화했을 때, 딜레마에 봉착했다. 한 관점에서는, 위대한 회사로 가는 최선의 길은, 이 회사가 클리넥스 브랜드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보인, 소비재 사업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는, 킴벌리-클라크의 수익의 대부분은 잡지와 공책을 위해 종이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코팅지 공장에서 발생하고 있었다--100년 간 이 회사의 핵심 사업이었음. 이 회사와 이름이 똑같은 위스콘신 주 킴벌리-클라크 타운도 킴벌리-클라크 종이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가혹한 진실, 즉, 소비재 사업이 3개의 원의 테스트에 가장 잘 맞는 유일한 영역이라는 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킴벌리-클라크가 제지 업 위주로 남아 있으면, 좋은 회사로서 안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회사로 되기 위한, 힘들기는 하나 유일무이한 시도는 종이를 기초로 하는 최고의 소비재 회사가 되는 것이었다--프록터 앤드 갬블 그리고 스코트 페이퍼 캄퍼니 같은 회사들과 맞서고 그들을 이긴다면 말이다. 그러려면 종이 공장 사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느 한 이사가 말했듯이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CEO가 내린 가장 배짱 있는 결정”을 내려, 다윈 스미스가 제지 공장을 팔았다. 심지어 위스콘신 주 킴벌리에 있는 공장까지 팔았다. 그런 다음 그 모든 돈을 프록터 앤드 갬블과 스코트 페이퍼 회사와의 대대적인 전쟁을 위한 군비로 투척했다. 월 스트리트 분석가는 그 조처를 비웃었고, 경제지는 어리석은 조처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미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25년 후, 킴벌리-클라크는 그 싸움에서 세계 최고의 종이를 기초로 하는 소비재 회사로 등장하여, 8개 카테고리 중 6개 부문에서 프록터 앤드 갬블을 이겼고 과거의 숙적 스코트 페이퍼 사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주주를 위해서는, 다윈 스미스 재직 기간 중의 킴벌리-클라크가 시장 수익률을 네 배나 앞섰고, 코카콜라, 제너럴 일렉트릭, 휼렛 패커드, 3M 같은 위대한 회사들보다 월등 좋은 실적을 올렸다.

중단할 일을 정하는데 있어, 스미스가 그 플라이휠을 엄청나게 크게 밀었다-- 그러나 단 한번이었다. 제지 공장을 판 후, 킴벌리-클라크가 변화하기 위해, 누적적으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미는 일이 수없이 필요했다. “킴벌리-클라크가 P&G와 . . . 정면 대결하기로 했을 . . . 때 . . . 이 잡지사는 큰 실패를 예언했다. 참, 어리석은 아이디어라고.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어리석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스마트한 아이디어였다.” 두 기사 사이의 경과 기간은 21년이었다.

이제부터 시작합시다.

평범한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바뀌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가 연구하는데 5년이--그리고 10.5 인년(person-year)--걸렸고, 결국 우리 나름의 플라이휠 노력의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effort이 우리의 리서치를 돌아볼 때, 우리가 찾아낸 것 중 내가 볼 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 모든 good-to-great 회사들 중 어느 회사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그런 깨우침에 이르는 여정에서도, 마법의 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위대함에 이르는 진정한 길은 단순함과 근면을 요함이 드러났다. 인스턴트 식 조명이 아니라 명료함을 요한다. 우리 각자가 제일 중요한 것에 집중함이--그리고 그 밖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을 제거함이--필요하다.

5년의 조사 후, 내가 확신하는 점은, 올바른 일에 주의를 집중하기만 하면--그리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걸 중단하기만 하면--일하는 시간의 양을 늘리지 않고도 강력한 ‘플라이휠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확신을 갖게 된 점은, good-to-great 회사에서 발견한 것이 널리 적용된다는 것이다--CEO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필생의 사업까지 포함하여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든 간에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경우, 처음 생기는 물음은 “그러나 어떻게 해야 내 CEO가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느냐?”다, 내 대답은, 그건 걱정 말라는 거다. 그 대신 결과에--그리고 각자의 책임 범위 안에서 ‘플라이휠 효과’를 만들어내어 평범함을 무너트리는 것에--집중 한다. 우리 자신의 미니버스에 태우고 싶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한, 우리 나름대로 남과 차별화되는 작은 영역에서 위대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각자가 나름대로 일하고 영향력이 미치는 분야를 택하여 good-to-great로 나아가도록 집중할 수 있다. 모든 CEO가 이 개념을 이해하는지 여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오직 여러분과 내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합시다.

해설 1: 좋은 회사와 위대한 회사의 구별

좋은 회사가 위대한 회사가 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짐 콜린스와 그의 조사 연구 팀이 그 답을 찾아내는데 5년이 결렸다. 11개의 회사가 good에서 great로 도약했고, 이어서 적어도 15년 간 그 성적을 유지했다. 어느 전도로 위대해야 위대하다고 할 수 있나? good-to-great 회사들은 그 전환 시점 후 일반 시장보다 6.9 배의 평균 누적 수익 배당률을 나타냈다. 실제로 검토하고 선정하는 과정은 엄격했다. 그 기준을 아래와 같다:

. . . . . . . . . . . . . . . 중 략 . . . . . . . . . . . . . . .

해설 2: 좋은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

Fast Company: good-to-great로 회사를 변화시킨 CEO는 대개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우연인가?

Jim Collins: 유명한 인물이 없는 것과 good-to-great 성과가 있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있다. 왜냐? 첫째, 회사에 유명한 인물이 있으면, 그 회사는 “한 명의 천재와 1,000 명의 조수”가 있는 상태로 되고 만다. 그러면 모든 일이 사실상 CEO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좀 더 깊이 보면, 리더가 무언가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리더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일과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려는 야망이 있어야함을 우리가 발견했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가 자존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의미는, 한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 가령 A안은 리더의 자존심을 그리고 B안은 그 일과 그 회사에게 유리할 때, good-to-great 리더는 B안을 택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는 것이다. 명성이 높은 CEO는, 그와 동일한 결정 시점에 회사와 일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존심을 우선시 할 가능성이 더 많다.

FC: 그런 익명의 CEO처럼, 대부분의 good-to-great 회사도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JC: 사실, 돈 많이 벌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지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짜 일을 하고 있다. 늘 단조롭고 고된 일을 엄청 많이 하고 있으며 신명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미다. 현실적인 경제 내에서 실제로 일하는 것은 차를 만들고, 부동산을 파고, 식품점이나 은행을 운영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얻은 하나의 훌륭한 발견은 누구나 위대한 회사에 있을 수 있고 또한 철강 공장에서도, 약국에서도, 식품점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다시는, 아무도 자기 회사와 산업, 또는 자기가 속한 사업의 종류에 관해 한탄할 권리가 없다.

FC: 회사 경영자가 아닐 때, 이 good-to-great 교훈이 어떻게 적용되는가?

JC: 기본 메시지는, 각자 나름대로의 플라이휠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신이 책임지는 무언가에서 모멘텀(추동력)을 쌓아가기 시작할 수 있다. 위대한 (또는 매우 훌륭한) 부서를 만들 수 있다. 위대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각각의 아이디어를 하나씩 택하여 자신의 일이나 자신의 삶에 이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다.

FC: 현재의 경제적 침체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에 관해 당신의 리서치는 어떤 방안이 있다고 보나요?

JC: 내가 지금 회사를 경영한다고 가정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가능한 한 최고의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이다. 내 버스를 채울 때 그 외의 것은 다 그 다음으로 늦추겠다. 어려운 때가 지나면 다시 좋은 때가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 플라이휠이 다시 돌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내 조직의 성공에 가장 크나큰 제약 조건은 충분히 올바른 사람을 구하고 잘 유지하는 능력이다.

원문 보기: http://www.fastcompany.com/magazine/51/goodtogreat.html?page=0%2C5

 

짐 콜린스가 쓴 비유의 이미지와 도표:

 

고슴도치는 늘 여우에게 이긴다. 고슴도치는 단순한 원칙을 지킨다. 소박하고, 꾸준하고, 수수하다.

 

고슴도치 개념의 3개의 원:

정말 깊이 열정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가? 타고난 자질로 보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소득을 창출하는 구체적 방식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교차 영역이 우리의 ‘고슴도치‘ 개념.

 

플라이휠

1. 플라이휠의 처음 형성기에는 개인의 카리스마나 쇼맨십이 아니라 소박하고 수수하고 조직 위주로 생각하는 레벨 5 리더십 그리고 먼저 사람, 그 다음에 할 일을 결정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사람.

2. 플라이휠이 비약적으로 돌기 시작하기 전에 1)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처하며, 고슴도치 개념을 정한다 -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생각

3.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문화를 만들고, 이 단계에서 기술이 플라이휠을 더 가속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 원칙을 고수하고 자제하는 행동

4. 처음 형성기에는 플라이휠이 서서히 돌아가나, 비약적으로 도약할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돌아가는 힘이 엄청나다.

플라이휠이 돌아가는 모멘텀(추동력 또는 타력)이 차츰 생기고, 브랜드 인지도가 차츰 증가한다.

● 고슴도치 개념에 맞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 눈에 보이는 결과가 축적되면서

● 사람들이 줄을 서고, 결과를 보고 더욱 더 에너지를 얻는다.

● 비약하는 시점, 즉. 돌파기에 이르면 가속력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우리의 버스에는 올바른 또는 적합한 사람을 태워야 하고, 올바르지 않은 또는 적합한 사람은 내리게 하거나 뒷좌석에 앉혀야 . . .

 

수십 톤 무게의 플라이 휠은, 처음에는 한 바퀴도 돌리기 어려우나, 몇 년 정도 돌리고 나면, 어느 정도 돌아가는 힘이 쌓이면서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생기고 , . . 10여년이 지나면 엄청나게 돌아가는 힘이 생기면서 위대한 회사나 조직으로 변화된다.

 

원문 보기: Jim Collins - Articles - Good to Great

http://www.jimcollins.com/article_topics/articles/good-to-great.html

출처 : www.jimcollins.com

S. H. Lee 옮김




Posted by Jae On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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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thè vanessa bruno 2012.10.11 1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련의에서 수행 볼 http://www.vanessabruno-coderemise.com/



스티븐 (Steven Paul Jobs) 1955 2 24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생 동거 커플인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압둘파타 잔달리 사이에서 어났습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인과 함께 동업으로 플 컴퓨터를 설립, 브루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애플1 개했으며, 애플 2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시켰습니다.

, GUI마우스의 가능성처음으로 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1985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업하여 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넥스트스탑을 인수하면서 경영 컨설턴트로 복귀했다. 애플 CEO로 활동하며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생부모는 "정자·난자 은행일 뿐"

잡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입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에 대해 잡스는 다소 흥분되고 짜증스런 어투로 생부모 보다는 양부모가 '진짜 부모'라고 강조했다.
그는 생부모에 대해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며 "그동안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잡스는 생모인 조앤 심프슨에게 직접 전화해 "낙태할 수도 있었는데 출산을 해서 고맙게 여겨졌다"고 전하기도 했다.또 "입양아라서 부모님이 나를 되찾게 하려고 열심히 일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도 나오는데 사실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오히려 독립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엄격한 기독교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다.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었다.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정비, 할부금 수금원 등의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였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3살 되던 해 아버지의 직장(자동차영업, 부동산중개)을 따라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단지에 들어선 주택가로 이주하였고 주변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하였다. 이때 전자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동년배 빌 페르난데스, 5살이 많았던 스티븐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 교류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자 독선적인 외톨이였지만 전자적인 지식과 집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은 비슷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회고한다. 홈스테드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마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회사에 취업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스티브 잡스는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던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지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아타리사에 복직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고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그의 도움을 받았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 컴퓨터(회로기판)를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을 하였다. 당시 회사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회로기판만 있는 퍼스널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당시 퍼스널컴퓨터 시장이 주목받게 되자 곧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인 애플Ⅱ를 만들어 냈다. 확장슬롯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획기적인 운영체계를 적용하여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영세한 업체로서는 사업여건이 불리했다. 스티브는 이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득해나갔다. 마침내 그들의 퍼스널컴퓨터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최고 부자대열에 합류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동안 연인관계였던 크리스 앤과 사이에서 리사(Lisa)라는 딸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리사가 친자임을 받아들였다. 또한 모순된 성격과 인색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지 않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회사내에서는 매킨토시와 리사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했다. 자신이 주도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자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은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받는다는 불만이 고조되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실패한 리사 프로젝트팀과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메킨토시 발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맥(Ma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매는 급속하게 줄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와 함께 매킨토시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1월 19일 워즈니악과 함께 백악관에 초빙되어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지만 워즈니악은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마침내 스티브는 현실성없는 망상가이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지목되어 1985년 5월 경영일선에서 쫓겨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社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의료업계에 판매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회사 모두 수익을 못 내고 스티브 잡스를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픽사는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1991년 3월 18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2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과 자녀양육 문제를 두고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전 모습과는 확연하게 변해있었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거부 로스 페로와 일본 캐논(Canon)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픽사의 존 레스터가 감독한 '토이스토리(Toy story)'의 원형이 되는 '틴토이(Tin Toy)'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을수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회사매출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이때까지 잡스는 픽사를 인수한 것에 후회하고 있었다. 19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새로운 운영체계를 원했던 애플이 넥스트 사(社)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여 경영 컨설턴트로 역할하며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픽사는 존 래스터가 제작한 제작한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상장하여 거의 빈털털이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를 단번에 억만장자에 올려놓았다. 2006년에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다.

 
 

혁신의 시작은 '디자인'

잡스는 어린 시절 입양아였기 때문에 남다른 시련을 겪을 수도 있었지만 우연히 컴퓨터와 인연을 맺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잡스의 혁신은 게임업체인 아타리에서 배운 디자인 철학에서부터 시작된다. 전기는 "잡스는 재미난 설계와 매력적인 상호작용을 창출하는 칩들을 추가함으로써 몇몇 게임이 개선되도록 도왔다. 아타리 게임들의 단순함이 지니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아보았다"고 그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했다.

잡스는 "멋진 디자인과 심플한 기능을 저렴한 가격과 결합하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이 바로 애플 컴퓨터가 애초부터 가졌던 비전이었다. 첫 번째 맥 컴퓨터로 시도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고, 아이팟으로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년 동안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한층 여유로워진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개발에 눈을 돌렸으며 그 대상은 음악이었다. 그는 항상 제품의 모양과 색깔을 결정하는 디자인에 매우 중시했다. 아이튠즈 개발에 이어 아이포드라는 MP3플레이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완벽주의자'

잡스의 팬들은 그가 왜 청바지와 티를 고집했는지 궁금해한다. 전기에서는 그의 꼼꼼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성격 때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애플 CEO로서 신제품 발표 때마다 보여준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에 인상을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이것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그의 철저한 준비 덕분이다.잡스의 아내 로렐 파월은 "잡스는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직접 내용을 만들고 수정하고 보통 6~7번씩 바꾸는 경우가 많다. 프리젠테이션 전날 밤 늦게까지 점검하고 3가지의 버전을 보여주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그의 완벽주의는 목수인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잡스에게 "보이지 않은 쪽이라도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잡스는 "잘못된 제품을 출시하느니 일정을 어기는 게 낫다"고 말 할 정도로 기술, 경영 등에서 완벽을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이제 사업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로 인지되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는 모습은 바뀌어가는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로 각인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했다.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이 발표되고 전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은 약 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아이폰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문화적 파급효과도 지대했다. 또한 2010년 발표된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하는 변화는 가속화되었다.

 

죽음 아쉽지만 '의식은 영속'

잡스는 전기에서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마감되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는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래서 뭔가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뜻대로 그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다. 그가 남긴 '혁신'은 지금 많이 기업들의 귀감이 되고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전 세계 많은 이용자들이 그를 생각하고 기억하게 하고있다.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건강문제에 시달렸다.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2009년 간이식 치료를 받았다. 2011년 8월 24일 병세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5일에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스티븐 폴 잡스(Steven Paul Jobs) 연혁

 

1955년 = 스티븐 폴 잡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2월24일 출생
1972년 = 잡스, 오리건주 포틀랜드 리드컬리지 입학, 한 학기만에 자퇴
1974년 = 잡스, 비디오게임 제작사 아타리에서 근무하던 중 ‘홈브루 컴퓨터 클럽’ 모임에서 

                고교동창 스티브 워즈니악과 만남 
1976년 = 잡스·워즈니악, 4월 애플컴퓨터 설립, ‘애플1’ 출시
1978년 = 잡스와 여자친구 브레넌 사이에 딸 리사 태어남
1980년 = 애플, 공개상장
1982년 = 애플, 연매출 10억달러 돌파
1983년 = 잡스, 존 스컬리 CEO로 영입
1984년 = 1월 매킨토시 출시, 이해 슈퍼볼에서 광고 ‘1984’ 발표
1985년 = 잡스, 스컬리와 충돌로 9월 애플에서 방출. 스티브 워즈니악도 퇴사
1986년 = 잡스, NeXT 설립. 조지루카스로부터 ‘픽사’ 1000만달러에 인수 
1997년 7월 = 9일 잡스, 애플 CEO직무대행으로 복귀
1998년 5월 = 애플 아이맥 출시
2000년 1월 = 6일 잡스, 맥월드엑스포에서 CEO로 공식 취임했음을 발표
2001년 10월 = 애플, 휴대형 음악재생기 아이팟 출시
2003년 10월 = 잡스 췌장암 판정
2004년 8월 = 1일 처음으로 수술 사실 공개
2005년 6월 = 12일 스탠퍼드대학 강연에서 암 투병 사실 언급
2007년 1월 = 애플, 스마트폰 아이폰 출시
2008년 6월 = 9일 애플 개발자회의에서 유달리 수척해진 모습으로 등장. 21일 애플, 잡스 사임

                     계획없으며 건강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라는 공식입장 밝혀. 애플 주가는 10% 하락
2008년 9월 = 9일 잡스, 신형 아이팟 직접 공개, 중병설 일축
2009년 1월 = 5일 잡스, 공개서한 통해 “호르몬 불균형 있으며 체중 감소하고 있다”고 밝힘.

                     14일 잡스 병가. 회사 경영을 팀 쿡 COO에게 넘긴다고 밝히고 중요한 전략적

                     결정에는 여전히 참여할 것이라고 밝혀.
2009년 6월 = 23일, 잡스 간 이식수술 성공적이라고 밝혀. 29일 잡스가 업무에 복귀한다고 발표
2009년 9월 = 9일, 잡스 업무 복귀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 등장해 아이팟 신제품 소개
2010년 1월 = 애플, 태블릿 아이패드 출시
2010년 5월 = 애플 시가총액,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
2011년 2월 = 23일, 잡스 팀 쿡에게 다시 운영 넘기고 병가 
2011년 3월 = 23일, 아이패드2 발표 위해 병가 후 다시 공개석상 등장
2011년 6월 = 아이클라우드 발표
2011년 8월 = 24일, 잡스 애플 CEO 사임, 팀 쿡 후임으로 지명

2011년 10월 = 10월5일 56세를 일기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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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des ralph lauren 2013.04.20 0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픈 상처만 내게 남겨질테니까

  2. nike free 2013.04.21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을 감아 보아도 귀를 막아 보아도

  3. toms shoes 2013.04.23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은 생활의 꽃이요, 삶의 보람이요, 마음의 기쁨이다.

  4. christian louboutin 2013.04.26 0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욱 절실한 자신의 독특




피터 드러커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만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릴 것이다. 피터 드러커, 그가 경영학을 정리하기 이전에는 경영이란 하나의 능력이자 스킬이었다. 그래서 타고난 장사꾼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거였지 이걸 배운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 분야를 유럽에서 건너온 피터 드러커가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한편, 향후 시대 흐름까지 읽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피터 드러커의 성장 배경을 보면서 이 사람이 대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머니가 프로이드의 제자셨기도 했고, 지금으로 생각하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물들이 드러커 주위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 집안이라 살롱이나 기타 다른 기회들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았던 터라 이런 경험들이 피터 드러커의 사고폭을 넓혀준게 아닌가 싶다.
그는 새로운 가치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한다.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필요없는 일들 쓸데 없는 것들을 먼저 폐기해야한다고 한다. 
직관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보를 선별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직관과 통찰로 시대의 경제, 경영의 흐름과 많은 것들을 예측하고 추측해 내었었다. 
히틀러를 보고는 그가 곧 피를 부르는 전쟁을 일으킬 것에 대해서 예측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은 그가 얘기하는 직관과 통찰을 통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고 생각한다. 
 

About Peter Drucker /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
 

이름 : 

본명 : 
 
Peter Ferdinand Drucker

출생 : 
 
1909년 11월 19일

사망 : 
 
2005년 11월 11일

출신지 : 
 
오스트리아

직업 : 
 
경제학자,대학교수

학력 :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경력 :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현재는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됨)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직
뉴욕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대표작 : 지식경영, 21세기 리더의 선택, 단절의 시대





[ 약력 ]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런던의 국제 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193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간했다. 피터 드러커는 교수로서도 매우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39년에는 뉴욕 주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경제학 및 통계학을 강의했고, 1942년부터 1949년까지는 버몬트 주 베닝턴 대학에서 철학 및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1950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1년부터 지금까지는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현재는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됨)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직중이다.1990년에 '드러커 비영리 재단'을 설립했고 지금은 재단 명예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 소개 ]현대 경영학을 발명한 사람으로 불려지는 저명한 경영학 교수, 저술가, 컨설턴트이다. 그는 특히 지식경영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미래에 조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주로 해왔다. 피터 드러커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비롯한 많은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현재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정기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권에 이르는 경영 관련 저서들을 출간했으며, 그 책들은 모두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역시 그의 많은 저서들이 번역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경영학 계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경영의 구루'로 칭송받고 있는 노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저술가로서, 교수로서, 컨설턴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 주요 저서]

지식경영
21세기 리더의 선택
단절의 시대

마지막 통찰 By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피터드러커 경영 바이블
기업가 정신
경영의 실제
미래의 결단
나의 이력서
성과를 향한 도전
의사결정의 순간
프로페셔널의 조건
N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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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명언 (Peter Druker, 1909 ~ 2005)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힘은 표현력이며현대의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된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기업은 단순히 '기업' 아니다기업은 민주주의를 이끄는 경제적 기관이다." 

"지식 근로자 개개인은 CEO 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기업은 단순히 '기업'이 아니다. 기업은 민주주의를 이끄는 경제적 기관이다."

"기업이 무엇인지,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기업이 번영할건지 결정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들은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는가?"

"회사가 인정하든 말든 간에 이제 고객이 회사의 보스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협력이란 곧 당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행동하면서 배우는 것, 그리고 당신이 아는 것을 혁신하는 것과 같다."

"'관계', 이것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경영이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경영의 과제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방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의사결정은 판단이다. 그것은 몇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올바른 것과 틀린 것 중 고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종종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두 가지 실천 방향 중의 선택일 것이다."


"지식 근로자 개개인은 CEO 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About Peter Drucker /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
 

이름 : 

본명 : 
 
Peter Ferdinand Drucker

출생 : 
 
1909년 11월 19일

사망 : 
 
2005년 11월 11일

출신지 : 
 
오스트리아

직업 : 
 
경제학자,대학교수

학력 :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경력 :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현재는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됨)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직
뉴욕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대표작 : 지식경영, 21세기 리더의 선택, 단절의 시대





[ 약력 ]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런던의 국제 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193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간했다. 피터 드러커는 교수로서도 매우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39년에는 뉴욕 주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경제학 및 통계학을 강의했고, 1942년부터 1949년까지는 버몬트 주 베닝턴 대학에서 철학 및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1950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1년부터 지금까지는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현재는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됨)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직중이다.1990년에 '드러커 비영리 재단'을 설립했고 지금은 재단 명예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 소개 ]현대 경영학을 발명한 사람으로 불려지는 저명한 경영학 교수, 저술가, 컨설턴트이다. 그는 특히 지식경영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미래에 조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주로 해왔다. 피터 드러커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비롯한 많은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현재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정기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권에 이르는 경영 관련 저서들을 출간했으며, 그 책들은 모두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역시 그의 많은 저서들이 번역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경영학 계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경영의 구루'로 칭송받고 있는 노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저술가로서, 교수로서, 컨설턴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 주요 저서]

지식경영
21세기 리더의 선택
단절의 시대

마지막 통찰 By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피터드러커 경영 바이블
기업가 정신
경영의 실제
미래의 결단
나의 이력서
성과를 향한 도전
의사결정의 순간
프로페셔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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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성우 2012.10.12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리를 잘하셨네요. 퍼가도 될까요?



애플의 스트븐 잡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 페이북의 마크 주커버그 이들이 오늘날 있는 것으 부모의 역활이 가장 컸다. 
어떤 상황에도 아이를 믿어주고 끝까지 도와 주는 그들의 부모의 얘기를 보면서 정말 부모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는 친구가 유치원 원감인데 이 친구가 나한테 얘기해 준 것 이 있다. 
유야교육을 보다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한다. " 이상한 아이는 없다. 이상한 부모만 있을 뿐이다 " 
이 얘기를 자신의 직접 유치원 교사하고 원감을 하다보면 이얘기가 그런 얘기구나하고 실감했다고 한다. 
아이는 정말 스폰츠 처럼 부모의 인격과 모든 것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집에서의 부모의 행동와 습관등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부모 교육
 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아래는 Chosunbiz에 신린 기사이다. 많은 인사이트를 줘서 이글을 그대로 올린다


잡스·게이츠·저커버그… 3人의 천재 키워낸 부모들의 '4가지 교육법'
잡스 養父 '맹부삼천지교' - NASA 데려가 IT 꿈 키워주고 명문 보내려 집 팔아 이사까지
게이츠 父 "하고싶은 일 해라" - 자기 직업인 변호사 강요안해, MS 창업할때 사업자금 대줘
저커버그 父 "천재성 깨워라" - 9살때 프로그래밍 가르치고 중학생 되자 대학원 강좌에

1972년 9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Reed)대학.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1000㎞를 달려왔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입양아인 아들은 "부모가 있다는 걸 누가 아는 게 싫다"며 학교에 못 들어오게 했다. 애플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지난 24일 발간된 자서전에서 '나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분들인데,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더불어 IT(정보기술)로 세상을 바꿔놓은 천재(天才)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 도사'급 실력을 자랑했지만 인간관계는 서툴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부모가 자녀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남다르게 교육했다는 점이다.

1. 천재성을 일찍 깨워라


페이스북을 창업한 저커버그의 부친은 치과 의사,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은 아들이 9세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아들의 실력이 자기보다 뛰어난 걸 알고는 11세 때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자를 가정교사로 채용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자 집 근처 머시 칼리지(Mercy College)대학원의 컴퓨터 강좌에 보냈다. 당시 교수가 "강의실에 아이를 데려오면 안 된다"고 하자 저커버그 아버지는 "내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학생"이라고 답했다.

스티브 잡스의 부친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자동차 수리공이었다. 잡스가 전자회로에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는 주말마다 아들 손을 잡고 중고 부품상을 찾아가 라디오·전축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구해줬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잡스 부모는 이웃에 사는 엔지니어에게 초등학생 잡스를 보내 마이크와 스피커의 작동 원리 등 전자공학의 기초를 배우게 했다. 나사(NASA)연구소에 데려가 대형 컴퓨터를 보여주자 잡스는 첫눈에 반해 장차 컴퓨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2. 최상의 교육 환경을 만든다 

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는 시애틀에서 은행장을 지낸 할아버지와 변호사 아버지, 교사인 어머니를 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는 7세 때 집에 있던 백과사전을 다 외워 부모를 놀라게 했다.

부모는 그를 시애틀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보냈다. 게이츠 부모는 1967년 학부모회를 통해 이 학교에 컴퓨터 단말기를 기증했다. 그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를 본 적도 없었을 때 게이츠는 학교 전산실에서 밤늦도록 컴퓨터를 만지며 놀 수 있었다. 저커버그는 최고 명문 기숙학교 중 하나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도 아들을 보냈던 명문. 그는 프랑스어·히브리어·라틴어·고대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컴퓨터 천재였다. 대학 시절엔 호머의 일리아드를 자주 인용하는 컴퓨터 괴짜로 통했다. 아버지의 영재교육 덕분이었다.

 (왼쪽)스티브 잡스가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발표하던 당시 모습. 잡스는 자동차 수리공 출신인 부친 폴 잡스<작은 사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완벽주의를 배웠다. /연합뉴스 (가운데)1984년 컴퓨터 운영체제 MS-DOS를 개발하던 빌 게이츠. 변호사인 부친 윌리엄 게이츠 2세<작은 사진>와 교사 출신 모친은 그가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갖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corbis·토픽이미지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온라인 영화감상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치과의사인 부친 에드워드 저커버그<작은 사진>는 아들이 10세도 되기 전에 고급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블룸버그
잡스의 부모는 아들이 다니던 공립 중학교에서 패싸움과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자 지역의 명문 학교로 전학시켰다. 이를 위해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했다. 친부모에게 "아들을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던 양부모는 잡스를 사립 리드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10년 넘게 모아둔 적금통장을 깼다.

3. 내 아들을 믿는다

잡스가 말썽을 피워 학교에 불려간 부친은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잃는 것은 교사 책임이지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다.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면서 바보 같은 내용만 달달 외우게 하는 학교가 문제"라고 오히려 야단을 쳤다.

게이츠와 저커버그의 아버지도 자기처럼 변호사나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내버려뒀다. 둘 다 명문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각각 MS와 페이스북을 창업한다고 할 때도 반대는커녕 사업자금을 대줬다. 빌 게이츠는 "당시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소프트웨어 사업을 한다고 하버드대를 때려치울 때도 부모는 나를 믿어 주었다"고 말했다.

4. 자녀에게 모범을 보인다

잡스 부친은 집에 울타리를 만들 때 망치질을 가르쳐주고, 차고에서 자동차를 수리할 때도 함께 일했다. 그는 "남에게 보이는 앞부분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숨겨져 있는 뒤쪽도 잘 다듬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잡스의 완벽주의는 어려서부터 잉태된 셈이다.

저커버그도 "부모님에게 질문을 하면 '예' '아니오' 같은 단순한 답변이 아니라 사실과 경험,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대고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가장 훌륭한 역할 모델이었던 것이다. 

출처 : Chosun Biz 출처2011.10.26 03:02 김희섭 기자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26/2011102600231.html 
 



Posted by Jae On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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